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계급 특진 (문단 편집) == [[미군]]의 사례 ==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병사/[[수병]]으로 시작해서 장교로 임관한 뒤, [[영관급 장교]]까지 진급한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병력이 적고 기술군의 성격이 강한 육군/해군/해병 항공대[* 육군항공대는 전후 공군으로 독립] 조종사 등에서 이런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군]]의 경우 전시에 벌어지는 특진에 매우 관대하고 체계적인데[* 이것은 미군이 평시에는 군대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전시에 팽창하는 역사적 전통에 기인한다. 미국이 탄생했던 독립전쟁때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주요 전쟁때마다 군 규모를 매우 늘렸다가 전쟁이 끝나면 매우 축소한다.], 미군에만 있는 특이한 전시 진급과 직책 진급이 있다. 전시라는 상황 하에서 고속 승진이 가능하지만[* 어느 정도였냐면 20대 후반의 나이에 소령-중령계급과 그 직책에 보임되는 경우에 무척 흔했고 위관/영관급들중에, 특히 전쟁 전부터 복무했던 정규군은 한 계급에 진급한지 6개월이 안돼서 다음 계급으로 재진급이 되었던 경우도 흔했고 전시 군대의 기간장병으로서 고속 승진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다. 예를 들면 웨스트포인트의 1936년 졸업생[* 베트남 전의 사령관이었던 웨스트모어랜드, 에이브람스 장군이 이 기수이다.]의 경우 진주만 기습 무렵 대위(전시 계급)[* 1940년 7월 경에 미국은 1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평시 징병법이 통과되어 나름 전쟁 대비를 시작했고 육군의 경우 정규군과 주방위군, 예비군을 모두 합쳐 Army of the United States라는 징집군 체제를 형성했고 이 체제는 후일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까지 이어진다. 이때부터 장병들에게 전시계급을 부여했다.]였는데 이들중 상당수는 계속 승진하여 44-45년 무렵 대령(전시 계급)으로 진급했다! 이들의 연령상으로는 30대 초,중반에 달성한 것이다.] 원래 계급도 따로 기록되어서 급여는 원래 계급 기준으로 지급되며, 전쟁이 끝나면 본 계급으로 환원된다. 물론 때와 장소에 따라서 전쟁시 진급된 것이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기도 하다. 직책 진급의 경우 군 내의 중요한 직책에 서열상으로 낮은 직위의 군인을 임명하게 되면, 직책은 높은데 계급이 낮아서 명령체제가 뒤흔들릴 위험성이 있으므로 해당 직위에 있을 때만 한정으로 높은 계급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해당 직책에서 해임되면 원래 계급으로 돌아간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주인공 격인 리처드 윈터스가 [[중위]]→[[대위]]→[[소령]]으로 불과 2년만에 진급했는데, 상급자들이 죽거나 직위 이동에 전공이 겹쳐서 진급이 빨랐다. [[아이젠하워]] 대장은 원래 계급이 '''준장'''이었는데, 전시 진급으로 초월 진급한 것이다. 상기에 나와있는대로 급여가 지급되었기에, 결국 '''준장 월급을 받는 대장'''이 되었다(…).[* 단 아이젠하워 장군과 니미츠 제독은 1944년 연말에 원수로 진급했고 원수는 역사적으로 국가를 불문하고 종신계급이었기때문에 평시계급 역시 원수로 등록되어 전/평시 상관없이 의전서열과 연봉(당시 물가기준으로 1만 5천달러)은 원수처럼 받게된다.]태평양 함대 사령관, 중부태평양 해역군 사령관을 역임한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소장에서 중장 계급을 건너뛰어 진주만 공습 이후의 미 태평양 전역을 지휘하게 된다. 진주만에 대한 앙갚음으로 1942년 일본 본토 공습을 단행하고 귀환한 제임스 두리틀 중령은 준장으로 2계급 특진. 전설적인 영화배우 [[제임스 스튜어트]]는 1941년 3월에 조종 특기 사병으로 입대, 1945년 '''[[대령]]''' 계급으로 종전을 맞이하여 1959년 7월 23일 미 예비공군(AFRC) 준장으로 진급했다. 2차 대전 이후, [[베트남전]] 때의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그린베레]] 대원 중에는 어느 전설적인 상사가 역사에 남을 활약을 하고서[* 이 정도 활약이면 고과성적이 엄청나게 높다.] 파월 미군 사령관과 만난 자리에서 대화 몇 번에 그 자리에서 대위로 진급(!)하여 아예 자기 부대를 지휘하게 된 경우도 있다. 동일인물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아마도 로버트 L. 하워드 대령으로 추정된다. 그린베레였던 로버트 대령은 1969년 상사에서 중위로 진급했다. 1971년 [[명예 훈장]]을 살아서 수훈(!)하였고[* 수훈행위일은 1968년 12월 30일] 진급시점에서는 [[수훈십자장]], 은성훈장을 수훈한 상태였다. 여기에 공로훈장 3회, 동성훈장 4회, [[퍼플 하트]] 8회를 수훈했으며 전역시 현역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수여받은 군인이었다. 이외에도 알렉산더 헤이그 전 국무장관은 국가안보 부보좌관 시절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소장에서 중장을 거치지 않고 대장으로 특진해 [[육군참모차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 반대로, '''전사자에 대한 특진'''에는 매우 인색하다. 영웅적인 희생이라도 의회 [[명예 훈장]]에서, 서훈을 추서받은 장병들이 세운 무공에 대해서 훈장을 수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명예 훈장을 비꼬는 말이 바로 '''죽은 영웅들을 위한 훈장.''' 살아서 받는 사람들도 많지만, 명예 훈장을 받을 상황이라는게 일개 보병한테는 사실상 '''죽음과 가까울 만큼 위험한''' 수준이고 실제로도 산 사람보다는 전사한 사람에게 주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다. 군복무를 엄청 오래해서 거기까지 진급하거나 [[학사장교]]([[OCS/OTS]])의 경우 시험에 합격해야 장교가 되는 것이 미군이다[* 다만 미군 학사장교는 시험보다는 대학교 [[GPA]]가 가장 중요하며, 그 외의 여러가지 부분들(교내활동, [[봉사활동]], [[리더십]] 경험, [[면접]] 등)을 고려해 임관을 한다. 즉, 우리나라 [[공무원 시험]]처럼 시험 자체의 비중이 아주 크진 않다]. 그만큼 장교되기가 어렵다. 심지어 미군은 [[단기간부사관|Green To Gold]]라고 해서 상사 이상이더라도 만 40세 이하일 경우 [[장성급 장교]]와의 면접과 회견을 한 뒤 고과성적을 검토해서 계급장을 소위로 바꿔서 달아주는 정식 제도까지 존재한다. 그리고 그렇게 진급한 소위는 [[대한민국 국군]]의 소위와는 달리 부사관 시절의 [[호봉]]이 모두 인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